여행할 권리 저자 김연수 출판 창비 발매 2008.05.13. 역전의 가게에서 자란 내게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들이었다. 가게는 서향이었다. 오후가 되면 빛의 각도는 날카로워졌으므로 어머니는 두 손으로 쇠 손잡이를 잡고 힘겹게 차양을 드리웠다. 그러면 오랫동안 그늘이 떠나지 않았으므로 가게 안은 평화로웠다. 나는 즐겨 가게 앞에 앉아서 저무는 태양을 바라봤다. 태양이 저무는 모습은 어느 때고 장엄했다. 구름들은 덧없이 흩어졌다. 유년 시절에 오랫동안 그 구름들을 바라봤으므로 나는 덧없는 것들만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이제쯤 말할 수 있다. 역에서 사람들의 시선은 늘 삼십도 정도 위쪽을 향했다. 역의 천장은 높았다. 세 종류의 게시판을 붙여놓기 위해서였다. 거기에는 상행선 즉 서울로 가는 기차들의 시간표를 붙여놓은 게시판이 있었고 하행선 즉 부산으로 가는 기차들의 시간표를 붙여놓은 게시판이 있었다. 지선의 시간표는 경부선의 남는 칸에 붙여놓았다. 내가 자란 도시에서 아이들은 고등학